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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요소가 있으면서도,
하나의 테마로 묶을 수 있도록 사진 세 장을 택하는 것이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접근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사진을 선택하기로 했다.
서로 다른 노랑 계열을 띠는 수천개의 이파리를 가진 두 은행나무와 상록수들. 적외선의 밝기가 최고조가 되는 해넘이 시간. 투명해진 이파리와 호스. 이들을 범위로 한다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표면상으로 별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각 요소들을 분석하다보면, 어떠한 형태로든 사진 속 모든 요소들의 본질적인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 요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적합한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7가지 색깔이 들어있는 다채로운 보석을 가졌지만 아포칼립스 이후 세계에서 회색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이, 빛의 삼원색과 소리와 색깔에 대한 이론을 읽으며 회색 세상을 보는 내적인 색감을 찾는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
만약 이 사진들을 보고 이런 세계관의 이야기를 만든다면, 이는 이 사진들 속의 공통된 주제를 발견한 것일까, 아닐까. 동시에, 사진들이 포함하고 있는 요소들을 고유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닐까.
여러가지 사진의 조합들을 만들어보다가, 문득, 어떤 사진이든 통일되는 일관된 주제를 뽑을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다소 정직한 접근은 아니지만, 그러한 '일관된 주제'는, 연역적으로 혹은 아주 고유하게 붙이기 나름이지 않을까.
굳이 조건제시법의 명제 또는 '제목'의 형태로 발견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다채로운 요소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하나의 테마로 묶을 수 있는 세 장의 사진을 고를 수 있는 경우가 특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그다지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세 장의 사진들을, 편지를 받았던 주소로 전송했다.
그 다음, 또 한 장의 사진을 선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무엇 때문에 네번째 사진이 필요한 것일까?
혹시라도 내 선택이 균형적이지 않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가장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풍경사진을 선택했다.